검의 달인

※ 내용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용문입니다. 내용을 알고 싶지 않다면 인용구를 읽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한 게 아주 듣기 좋았으며, 거의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약간 외국인 특유의 악센트가 실려 있었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그녀가 내민 손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손등에 살짝 입술을 댔다. 새끼손가락이 살며시 안쪽으로 휜 듯한 그녀의 손은 아주 섬세했으며, 피붓빛은 가무잡잡하고 상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손톱은 마치 남자들처럼 짧게 자르고 있었고,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았으며, 부착하고 있는 액세서리라고는 가느다란 은반지 하나가 전부였다.
돈 하이메는 고개를 들고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컸고, 눈동자는 보랏빛을 띠고 있었으며, 그 보랏빛 눈동자 주위로 황금빛 테두리가 쳐진 듯하여 빛을 받으면 더욱 더 큰 느낌을 주었다. 새카만 머리카락은 풍성했으며, 마치 매 깃털처럼 자개가 박힌 핀으로 목덜미 부근에서 묶여 있었다. 여자치고는 상당히 큰 키여서, 돈 하이메와 겨우 2인치 정도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체격은 보통의 평균 여성들보다 조금 말랐고, 가느다란 허리에는 좀 더 날신해 보이거나 우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여성들이 착용하는 코르셋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아무런 장식도 달려 있지 않은 검은 스커트에 가슴에 레이스 장식이 달린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약간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겼는데, 아마도 오른쪽 입가에 있는 작은 흉터 때문에 더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 흉터로 인해 그녀의 입가에는 늘 미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돈 하이메 입장에서는 특히 스물에서 서른 정도 된 여자들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델라 데 오테로도 대략 그 사이인 것 같았다. 검술 교사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젊은 시절의 추억이 밀려 오는 것만 같았다.
47쪽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그보다는 훨씬 더 어리게 보았다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 나이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그녀가 말했다. 「늘 나이를 숨기거나 진짜 나이보다 어려 보이도록 애쓰는 것이야 말로 정말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나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는 것 아닐까요?」
「지혜로운 철학가다운 말씀이십니다.」
「그저 조금 사려 깊은 정도예요, 선생님. 좀 생각이 깊다고나 할까요.」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면이지요.」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성들이 현재 저도 다 갖추지 못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아시면 아마 놀라실 걸요.」
87쪽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검술을 시작하셨어요?」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참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부인은 참 대단하십니다. 부인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겠다고 하시고, 곧바로 저의 과거에 대해 물으시니 말입니다……. 이거,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그녀가 아주 매혹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남자들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불공평하게 대해도 결코 충분치 못할 것 같은데요.」
「너무 잔인한 대답이십니다.」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에요.」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도냐 아델라!」잠시 후, 그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지겹도록 단순하다 싶을 만큼 예절과는 동떨어진 말을 내뱉었다. 「당신의 입에서 그토록 쓰디쓴 반향이 나오도록 만든 남자에게 제 명함과 결투 들러리들을 보내야겠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재밌다는 얼굴로, 그리고 잠시 후 상대가 지금 농담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앍는 무척 놀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는, 입술을 반쯤 벌리다 말고 그만두었다. 마치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을 다시금 음미하려는 사람처럼.
「지금 하신 말씀은……」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제 평생 들어 본 것 중 가장 달콤한 이야기예요.」
90쪽 ~ 91쪽


그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어물쩍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델라 데 오테로는 그가 어떤 식으로 그 문장을 완성하는지 지켜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가방 속에서 부채를 꺼내 들더니, 접은 부채를 그대로 입술 위에 지그시 갖다 댔다. 그리고 조금 후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누빛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선생님께는 제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보이시나요?」
검술 교사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할 말을 찾았다.
잠시 후, 그가 최대한 간결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카지노 같은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시면, 그때 저를 그렇게 묘사하실 건가요? 젊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하이메 아스타를로아가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발끈하여 대꾸했다. 「오테로 부인.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라는 사람은 카지노를 함부로 드나드는 사람도 아니고, 친구가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또한, 설사 제가 카지노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친구들이 넘쳐흐른다 해도, 카지노 같은 곳에서 함부로 숙녀 이야기를 떠들어 댈 만큼 저속한 인간도 아닙니다.」
그녀는 그의 말속에 담긴 진실을 헤아리기라도 하려는 듯 한참 동안 그를 쳐다 보았다.
「조금 전에…….」돈 하이메가 덧붙여 말했다. 「부인께서도 제 체격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걸 모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인께서도 친구분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저에 대해 그런 식으로 묘사하실 거냐고 묻지도 않았고요.」
아델라 데 오테로가 마침내 미소를 지었고, 하이메 아스타를로아 역시 그렇게 했다. 순간, 그녀가 부채를 카펫 위로 떨어뜨리자 하이메 아스타를로아가 얼른 주워 들었다. 그리고 부채를 집기 위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그녀에게 부채를 건네주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불과 몇 인치의 거리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저 역시 친구도 없고, 티타임도 갖지 않는답니다.」그녀가 말했고, 돈 하이메는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 번이라도 친구를 가져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진정한 친구. 그 친구의 손에라면 선생님의 목숨을 맡겨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친구 말이에요…….」
돈 하이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힘들여 떠올릴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단 한 번 있었습니다. 정확히 우정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뤼시앵 드 몽테스팡 스승님 곁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했었습니다. 제게는 영광이었지요. 그분께서 지금 저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략)
92쪽 ~ 93쪽


「 돈 하이메,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을 당신이 제대로 이해 하게 하자면, 아주 오래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네요. 대략 10년 전으로요.」 마치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런 느낌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저 멀리 무한으로 무한으로 이어지는 어느 점을 바라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건 훨씬 뒤에 든 생각이지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돈 하이메의 가슴 속에 불러일으킨 감상을 그의 얼굴을 통해 살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한 소녀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었지요. 그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으면서요…….」
그녀는 자신의 표현이 야기한 효과를 평가라도 하듯이 잠시 침묵했다.
「영원한 사랑이…….」그녀가 다시 한 번 되뇌었다. 「하지만, 당신이 언짢아하실지 모르니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어요. 어쨌든 그 아름다운 사랑은 그로부터 불과 여섯 달 뒤, 이국 땅에서 맞이한 어느 겨울날 오후,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강어귀에서 끝나 버리고 말았지요. 남은 것은 눈물과 절대적인 고독감뿐이었어요. 그 잿빛 강물은 소녀를 미치도록 만들었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어찌나 미칠 듯이 소녀를 사로잡았던지, 소녀는 그 강물 속에서 시인들이 소위 달콤한 망각의 평화라고 부르곤 하는 그것을 시도하려고도 생각했었지요……. 당신 생각도 그렇겠지만, 제 이야기의 첫 부분은 이렇게 삼류 소설 같은, 너무나 세속적인 연애 소설 나부랭이 같은 것이랍니다.」
아델라 데 오테로는 콘트랄토로 아주 낮게 웃었다. 즐거움과는 전혀 상관 없는 그런 웃음이었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로 그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그녀가 말했다. 「그 소녀가 안개의 벽을 막 넘어서려는 순간,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한 거예요…….」
그녀가 다시 말을 멈추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이기는 했지만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때가 그녀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음성에 부드러움을 담아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남자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잿빛 강가에서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린 소녀를 어루만져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그녀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었답니다. 그 남자는 소녀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따사로움을 알게 해주었고,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오빠의 자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결코 가져 보지 못할 남편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숭고함을 잃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자신이 베풀어 준 은혜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지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돈 하이메?」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여전히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아델라 데 오테로가 지금 자신의 두 눈을 쳐다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다 알기는 무리겠지요.」그녀가 너무 작은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겨우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이러다가는 아델라 데 오테로가 이야기를 중단해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2년 동안에 걸쳐, 그분은 저를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예전의 소녀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여인으로 탈바꿈시켜 주셨어요. 그리고 여전히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셨고요.」
「매우 이타적인 분이셨나 봅니다.」
「아니요, 돈 하이메. 아마도 그런 아닐 겁니다.」그녀가 마치 질문에 대해 답변을 곰곰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단순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봐요. 그분의 행동이 전혀 이기적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왜냐하면, 아마도 그분 역시 나름대로 저를 만들어 가면서 만족감을 느끼셨을 것이고, 소유권을 마구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늘 제자리에 있는 일종의 소유물을 바라보는 긍지를 느끼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너는 내가 창조해 낸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이란다〉라고 언젠가 한번 말씀하시더군요. 아마 그 말이 맞을 거예요. 그분은 저라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과 돈과 인내심을 아낌없이 투자하셨으니까요. 예쁜 옷도 얼마든지 사주셨고, 발레 교습도 시켜 주셨고, 승마도 음악 교육도……검술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이 해주셨지요. 그래요, 돈 하이메. 그 처녀는 어떤 운을 다토났는지는 모르지만 천부적으로 검술에 자질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은 일 관계로 귀국해야 할 처지가 되셨지요. 그분은 처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더니 거울 앞으로 데려가서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한동안 들여다보게 하시던군요. 〈너는 아름답니단다. 그리고 이제 자유야.〉 그 분이 말씀하셨어요. 〈네 모습을 잘 보거라. 이 모습 그 자체가 내게는 보답이란다.〉그분은 유부남이셨고, 가족이 있었으며,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으셨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보살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시기 전에 선물로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집을 하나 마련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몸은 먼 곳에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빈틈없이 저를 주시하면서 그 무엇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지요.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답니다.」
그녀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7년이요〉라고 되뇌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가 조금 몸을 움직거리는 바람에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잠시 불빛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흔들리는 등잔불빛이 반사되었다. 입가의 흉터는 언제나처럼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돈 하이메, 이젠 그분이 누구신지 아실 겁니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할 뻔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기묘한 분위기에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까딱하면 둘 사이의 신뢰가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침묵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그를 쳐다 보았다.
「그분과 이별하는 날…….」그녀가 순간적으로 말을 일었다. 「처녀는 그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그분께 그저 큰 빚을 졌다는 마음을 이렇게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지요. 〈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꼭 불러 주세요. 지옥 끝까지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선생님, 만일 선생님께서도 그 처녀의 성품을 알 기회가 있으셨다면, 아마도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돈 하이메가 인정했다. 그녀는 입가의 미소가 깊어지면서 마치 일장 연설이라도 듣고 있는 사람처럼 몇 차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대리석처럼 차가워진 이마에 한 손을 갖다 댔다.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자지를 찾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하이메 아스타를 로아가 말했다. 「지옥 끝까지 가야 할 날이 찾아온 것이로군요.」
(하략)
250쪽~253쪽


책을 좀 읽어서 치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읽기 시작한 검의 대가입니다. 두번째로 읽어보는 스페인 소설이네요. 처음으로 읽어본 스페인 소설은 서양 소설과 관련된 교양 과목 공부 중에 읽은 책이었는데 제목이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트위터인가, 이글루스를 한참 하던 때인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언급했기에 구매해 본 책입니다. 영화가 있다는 정보까지는 기억이 나도, 그 이야기에서 이 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네요.

이 책은 완전히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어도 캐릭터 조형이나 이야기 흐름이 흥미롭기 때문에 끝까지 읽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58인가 59이 된 검술(펜싱) 강사로 이 책의 배경인 1800년대 중반에서도 고리타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에요. 펜싱의 기법 등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는 점은 흥미롭지만 스페인어, 불어로 된 서양 검술의 이름들이 낯설기 때문에 읽다 보면 한 번씩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스페인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이름만 들어서도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검술의 동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것은 현대의 스페인 사람도 마찬가지일테니까요.

문장의 흐름, 묘사의 스타일 등이 너무나 제가 쓰고 싶은 방향으로 이루어졌기에 여러 번 다시 볼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주인공이 너무 미인으로 묘사되는 바람에 저는 흥미가 훅 식고 말았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 조형은 나쁘지 않습니다. 외모나 설정이 장르소설에 가까운 느낌이 있어서 흥미롭네요. 다른 스페인 소설도 그럴까 궁금하더라고요. 또한 책에서 다루고 있는 스페인의 역사가 궁금해져서 예전에 사다놓은 스페인사 책을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했어요.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책장을 다시 정리해야 발견할 수 있겠지요.

콰트로 푸엔테스 광장에는 앞가르마를 똑바로 탄 뒤에 머리에 기름을 발라 바짝 넘긴 멋쟁이 청년 둘이 잘 다듬은 콧수염 끝을 쓰다듬으며 한 아가씨에게 뜨거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가씨는 보모의 삼엄한 경계하에서 캄포아모르 시인의 사랑의 시를 읽고 있었는데, 자신의 자그마하고 섬세한 발과 2인치 정도 올라온 곳에 자리 잡은 새하얀 양말 속의 볼록한 복사뼈가 얼마나 청년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고 있었는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141쪽

저는 이 장면에서 꽤 놀랐는데요, 동인계의 2차나 BL을 제외하고는 이런 식으로 남자 몸을 조각내서 드러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찬미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이런 방식의 성적 대상화는 여성들에게 익숙한 종류의 일이 아닌데다가 소설에서도 흔하지는 않은 부분이에요. 이게 또 흔하게 몸매 훑는 것과 다르다 보니까 더 눈에 확 띈 점도 있고요. 가슴이나 허리, 피부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일상적으로 접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죠. 성적 대상화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렇게 신체를 조각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보지도 못한 것을 찬양하면서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구나 하고 확 닿은 부분이어서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 2017-08-03 >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애드센스 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