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파시즘

어릴 때 대부분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어른들은 시야가 좁고 참을성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죠.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 판단은 맞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래요. 내가 어렸을 적보다 지금의 어른들은 더 그럴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효율적이라고?), 그 결과 다른 곳에 쓸 마음의 여유라고는 한톨도 남지 않지요. 모든 에너지를 다 써 버린 사람들이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 그나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라도 있어야 무너지지 않을 거에요.

예전의 저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다면, 지금의 저는 그냥 양적으로 일을 많이 합니다. 옛날의 저로서는 생각도 못할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혀 책 감상을 쓸 시간조차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다이어리에 책을 한 권 읽은 날이면 표시를 해 두어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최소한의 기록은 남겨 두고 있습니다. 대략 5권 정도는 감상이 밀려 있네요.

최근에 베란다에서 축축한 상자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세탁기 곁에 있어서 젖은 것인데, 열어 보니 책이 들어 있더라고요. 얼른 읽고 치워버릴 책 박스인데 겨우내 꺼내놓고 깜빡한 것이죠. 몇 권은 곰팡이가 슬었고, 몇 권은 무사했습니다. 이 책은 무사한 책 중 하나입니다.

2008년 정도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보았어요. 대략 그 즈음에 구매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때는 광우병 시위도 있었고 대통령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해 있었지요. 그래서 이 책을 샀었는데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알은체 한다고 느꼈고,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다 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에 나온 책을 지금 읽었을 때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일 겁니다. 저는 예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줄 알았습니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정치관을 떠나서 경제적으로도 잘못된 선택이었고, 이번의 박근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나와 여러분의 재산을 말아먹는 중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합리화라는 기제가 있어서인지 반성을 하지는 않더군요. 어쨋거나 올해도 망했습니다. 내년에도 망할 것 같네요. 생각해 보면 박정희가 전두환이 대통령이었을 때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 아니지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는 어떻게든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올 생각만 하고 있었단 말예요. 역사는 생각보다 쉽게 뒤로 간다는 걸 알게 되었지 뭐에요.

저는 진보주의자여서 진보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진보주의만이 진정으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진보주의자가 된 사람입니다. 죽지 않을만큼 일하고 안 죽을 만큼 겨우 벌 수 있다면 그런 상태로 영원히 참을 수는 없지요. 옛날 대갓집에서 하인들을 잘 먹인 이유는 하인들이 배가 부르면 불만이 없기 때문이죠. 최소한 그 정도의 계산은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데 말이죠.

책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이 책은 여러 명의 필진이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쓴 책입니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읽는 속도는 들쭉날쭉입니다. 요즘은 글 보기가 힘들어진 박노자는 확실히 구어적이면서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 책에 나온 원고를 쓴 것이 16년 전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0년 정도 되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 대단하죠. 최근 들어서 하는 생각인데, 태어나 보니 한국인이었던 우리보다 선택지가 있는데도 한국민이 되기를 선택한 박노자 같은 귀화인들이야 말로 참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침 군대 가기를 앞둔 동생에게 박노자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한국의 군사주의」를 권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군대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제 동생이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최선의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군대가 제 동생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저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권인숙의 「진보, 권위 그리고 성 차별」은 그야말로 지금 읽기에 적합하여 슬퍼집니다. 16년 전의 글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니요. 정말로 처참합니다.

다른 글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글입니다. 주민등록 제도의 부당한 점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반공법이 우리의 의식세계에 미친 영향. 모르면 모르고 살았어도 알면 불쾌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책은 255쪽으로 저보다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이라면 금세 읽을 수 있을 거에요.

16년 전의 책이라 하여 외면하지 마시고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덧글

  • 혜성같은 얼음의신 2016/08/09 17:14 # 답글

    1. 진보주의만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역사적 실례가 있나요? 이명박때 세계경제위기 잘 극복하고 성장하지 않았나요?
    2. 3공5공때 요직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현직에서 다 은퇴하지 않았나요?
    3. 우리안의 파시즘... 확실히 2008년 시위를 보면 진보는 파시즘집단 같아요. 과학적 증거도 소용없고 집단패닉에 민족주의에 정치적 획일화에...
  • Rein 2016/08/09 18:22 # 삭제

    1. 양극화는 더 심해졌죠. 입장차이는 있겠지만(당신이 금수저라면) 지금 흙수저가 중산층이 되는 길은 10, 20년전보다 훨씬 어려워진게 맞습니다.

    2. 당시 엘리트 유학생이었던 반기문이나 국보위 김종인 등, 과거 엘리트들은 아직 실재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3. 2008년 시위를 보면 '진보는' 이 아니겠지요. 파시즘은 진보나 보수에나 있어요. 일베나 오유냐에서 일베쪽이 훨씬 싸이코인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진보 보수 가리지는 않죠. (메갈이냐 일베냐 라고 한다면 비슷비슷하겠으냐 ~노 하는 애들이 싸이코라는건 분명하네요)
  • 혜성같은 얼음의신 2016/08/09 19:02 #

    1. 지니계수는 노무현이후에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 왜 거짓말 하시는지?
    http://www.index.go.kr/smart/mbl/chart_view.do?idx_cd=1407&m=1

    1인당 GNI 도 지속적으로 늘었습니다.2006년 2000만원 2015년 3000만원. 더 많이 버는데 뭐가 문제죠?
    http://kosis.kr/nsportalStats/nsportalStats_0102Body.jsp?menuId=3&NUM=166

    2. 유학생이 요직인가요? 김종인조차 그때는 요직이 아니에요. 국보위 재무분과 분과위원이면 경제정책에 관련된 자리구요. 그때 장차관들이 얼마나 남아있다고. 박철언이 누군지는 아세요?

    3. 일베가 2008년 시위같은 대규모 파시즘 행동을 했던가요? 기껏해야 찌질한 폭식시위를 했죠.
  • Rein 2016/08/10 13:52 # 삭제

    1. 지니계수는 노무현이후에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 왜 거짓말 하시는지?
    http://www.index.go.kr/smart/mbl/chart_view.do?idx_cd=1407&m=1

    <2015년 빈곤통계연보> 참조해보면 저소득층 빈곤율은 갈수록 늘고 있고 소비 양극화는 요새 신문에서 매일 나오는데 GNI 만 보면 딱 답이 나오시나보네요?

    2. 박철언이요? 아뇨 잘 모르겠네요. 5공부터 대통령이 누군지는 알고 그때부터 집권당이 누군지는 알죠.

    3. 2008년 촛불시위가 파시즘적 성격이었나요? 촛불시위에 엘리트주의나 인종차별 또는 민족주의가 있었어요!? 처음 알았네요. 일베에는 인종차별과 엘리트주의는 항상 보이는데 말이죠. 아무리 고까워도 촛불시위를 파시즘으로 모는 건 무리수네요. 사회적인 현상 이나 성공한 음모론 정도로 보면 모를까..
  • sirocco 2016/08/11 13:18 #

    1. 이명박과 신자유주의로 인한 충격은 뭐 이야기가 많으니까 직접 찾아보시고요.

    2. 요직에 있던 사람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 손에서 키워진 그 사람들의 방식을 답습하는 사람들이 문제죠. 그게 조직의 체질 아닙니까?

    3. 당시의 시위가 파쇼가 되려면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시민의 평등권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게 파쇼의 요건입니다.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피닉에 빠진다고 해서 파쇼가 되는게 아닙니다.
  • 하늘여우 2016/08/09 17:14 # 답글

    저하고는 다른 정치-경제관을 지니고 계신데 그건 차처하고, 확실히 요즘 사람들을 보면 파시즘적인 면모를 많이들 보이고 있죠. 내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 참 서글픕니다.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네요.

    덤으로, 자기가 고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도 고생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조금만 더 마음을 곱게 썼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특히 군대 문제에서.
  • sirocco 2016/08/11 13:19 #

    아무래도 먹고 살기 팍팍하니 그렇겠죠. 적어도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큰 합의를 이뤄 행동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군대에서 고통 받은 분들이 특히 더더욱 나서야 하는데 왜 안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 문제의 바닥에 상당 부분은 군대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 담배피는남자 2016/08/09 18:39 # 답글

    "대갓집에서 하인들을 잘 먹인 이유는 하인들이 배가 부르면 불만이 없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소위 진보라는 것들의 본모습이죠.
  • sirocco 2016/08/11 13:20 #

    진보주의자가 무슨 대단한 사람인 줄 아셨나 봅니다.
  • 담배피는남자 2016/08/11 13:37 #

    밥만 먹여놓으면 불만이 없을거라는 그 단순한 발상에서 도통 발전이 없거든요
  • sirocco 2016/08/11 13:41 #

    그 정도로도 발전 못한 수구파가 득세하는 나라에서 들을 말은 아니네요 ㅇㅅaㅇ
  • 담배피는남자 2016/08/11 13:59 #

    구태여 진보라는 타이틀을 붙일 필요도 없는거죠
  • sirocco 2016/08/12 12:48 #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없게 되고, 때로 존엄성이 훼손되고 모든 삶의 동력을 잃을 때에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진보주의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까요?
  • Skip 2016/08/09 21:05 # 답글

    저하고는 반대시네요. 진보사상에 푹빠져서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그짝에 몸담궈 봤다가 2008년에 질겁하고 보수로 돌아섰는데,
  • sirocco 2016/08/11 13:22 #

    저는 그 말은 너무나 핑계라고 생각하는데요, 진보사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 그 반대로 선택한 사상인 보수주의가 진보사상의 만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님은 단순히 비겁자이고 겁쟁이이고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 바꾸고 싶지도 않은 사람인데 그냥 젊은 사람들은 진보하니까 진보 해보셨던 거죠. 해보니까 내 몸에 안 맞고 하기 싫고 그래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시는 거고요. 님이 그래서 보수주의자가 돼서 딱히 뭐 대단한 일 하셨어요? 걍 진보 싫어한다고 말한 거 말고 하신 거 없잖아요.

    진보주의가 무슨 대단한 선이라고 생각해서 진보를 하셨다면 더더욱 진보를 모르셨던 거고요.
  • Skip 2016/08/11 22:09 #

    네, 충분히 만회 됐는데요.
    제도권 내에서 내가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고, 원하는 분을 지역 후보로 만들고 당선까지 되는걸 봤고 지역사회도 발전하고 있는데 이정도면 민주사회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거 아니에요?

    뭐 사업가 자살하게 만들고 전의경 두드려패면 세상이 좋게 변한답니까

    글쓴분은 세상이 좆된건 보수주의 때문이고 그걸 구원할 진보사상이라고 떠드시는데 X도 아닌것에 어찌 그런 자신감을 가지거 계신지 모르겠네요.
  • sirocco 2016/08/12 12:47 #

    보수주의 때문에 세상이 좆됐다고 한 적은 없고요, 진보사상이 그걸 구원할 거라는 말도 한 적 없습니다 .그런 사상이 어딧겠어요. 사람들 구해 보겠다고 죽기를 자처한 예수도 못했고 부처도 못 한 건데요.

    많은 활동 하셨고 성과 보셨다고 하시니 잘 하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 Skip 2016/09/02 23:28 #

    2000년에 나온 책을 지금 읽었을 때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일 겁니다. 저는 예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줄 알았습니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정치관을 떠나서 경제적으로도 잘못된 선택이었고, 이번의 박근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나와 여러분의 재산을 말아먹는 중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합리화라는 기제가 있어서인지 반성을 하지는 않더군요. 어

    지가 뭐라고 씨부린지도 모르는 인간이시네요
  • sirocco 2016/10/09 00:57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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