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축축하다 누구에게 랄 것 없이

나는 지방 공립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많지 않은 친구들 중에 문화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티비에 나오지 않는 것을 찾아가며 누리지 못했다. 집안 맏이여서 나에게 뭔가 좋은 것을 알려줄 친척도 거의 없었다. 나의 '문화'는 거의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그나마 풍족하게 한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독서이지만, 지도해주는 사람도 없어 스스로 선택하고, 편식하면서 취향을 만들어 왔다. 나는 어릴 때 고대사와 비교숭배에 흥미가 많아서 거의 그쪽으로만 책을 읽어, 문학적 토대는 약한 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런 부분에 풍부한 소양을 갖춘 사람들을 본 것이 좀 문화충격이 될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비싼 물건을 인증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부럽지만, 빼앗을 수 없고, 흉내낼 수도 없는 유산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얼마 전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의 자막이 문제가 되었다. 대사 중 Water, Wet을 홍수가 났다고 번역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물이 축축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영어로 이 말은 '뻔하다', '너무 뻔해서 말할 필요도 없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지적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지?


#2.
이 사실을 이야기한 그 사람들은 좀 더 예전에 이동진의 영화 비평에 대해서 '뻔한 이야기를 왜 하는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조심스러운 그의 태도가 잘못인가?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알고 있다. 뻔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평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그가 비평을 하고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그는 영리하고 박식하다.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덕목들은 비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부분이다.


#3.
최근 회사에서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팀원들이 특히 자주 그런 유형의 질문을 들었다.

팀장님께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대답하려고 애쓰지 마라'고 하셨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이란 이런 것이다. '그거 하면 우리 매출 올라요?' 답을 할 수는 있지만 어느 것이든 추측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질문을 반대로 질문자에게 돌려도 똑같아진다.

이런 질문을 왜 하나? 정말로 매출이 오를 수 있을까 궁금해서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한가지 꼬투리로 선택한 것일 뿐이다.

팀장님께서 이 질문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어차피 진지하게 생각해도 답이 없으므로)또 다른 답이 없는 질문으로 되돌려 줘라.'라고 하셨다. '그럼 안 오를까요?' 어차피 그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고 뻔한 말들을 경계해야 한다. 물이 축축하다고 말할 필요가 무엇인가? 단 한 번이라도 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애드센스 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