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별도 없는 한밤에》를 연속으로 읽었습니다. 《별도 없는 한밤에》가 하도 엄청나서 《미스터 메르세데스》에 대한 감상이 희미해져 버렸네요.

《별도 없는 한밤에》는 기발한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고, 몇 쪽을 읽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보이는 중편들을 모았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한땀한땀 쌓는 과정이 정성스러워서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최근에 본 중에서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고 생각한 책이 몇 권 있었지요. 하나가 《히페리온》 다른 하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였어요. 여기에 《별도 없는 한밤에》를 얹겠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그림으로 치자면 하이퍼리얼리즘 같습니다. 무엇을 썼는지는 상당히 선명하지만 어떻게 쓰는지 비전문가로서는 그 방법을 알기 어렵고, 설령 안다고 해도 기질이 맞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경지입니다. 《히페리온》은 정말 도저히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고요, 《별도 없는 한밤에》는 예를 들면 피카소 같습니다. 화풍으로 따지면 그렇지 않은데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렸는지 아느냐."고 반문하는 그 피카소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써서 이야기를 갖고 노는 그런 정도. 소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플롯이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스티븐 킹이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티븐 킹은 후기가 있는 책들을 후기와 맞춰보면 재미 있어요. 《언더 더 돔》에서는 브레이크가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실제로도 읽는 동안 멈출 수가 없었어요. 내용이 막 대단하고 얼개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이런 것은 아니지만 쭉쭉 계속 읽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는 이야기였지요. 《별도 없는 한밤에》에서는 작가의 진실을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외면하지 않고 때로 작가가 회피하고 싶어하는 진실들,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작위성을 특별히 더 피하기 위해서 아주 일상적인 사건을 심도 깊게 묘사합니다. 직면의 힘이란 강하지요.

수록작 중에서 특별히 좋았던 것은 〈빅 드라이버〉와 〈행복한 결혼 생활〉 이었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독하다. 어쩌면 읽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랬다면, 나 역시 쓰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다는 말을 꼭 해 두고 싶다. (중략)
나는 자기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작가를 좀처럼 참을 수가 없다. 그런데 도저히 참고 봐줄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야기 중심의 소설 쓰기'가 본질적으로 수명이 다 했다고 보는 자들이다. 이야기 만들기는 죽지 않았을뿐더러 문학 놀음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그리고 종종 우리 주변에 보이는 끔찍한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그리고 종종 우리 주변에 보이는 끔찍한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가끔, 항상은 아니고 가끔, 우리에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중략)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하게 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 부분은 일부러 이탤릭체로 강조했는데, 왜냐면 이야기가 훌륭하고 인물들이 생생하면, 다 읽고 나서 (때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책을 덮은 후에 비로소 생각이 느낌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스티븐, 당신 말이야, 작가로 살면서 돈도 엄청 벌었고 말이지, 그 진실이라는 것도……변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다, 나는 이야기를 써서 돈을 꽤 많이 벌었다. 하지만 돈은 부수 효과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돈을 노리고 소설을 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물론 진실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결정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소설에 관해서 논할 때 작가의 의무는 단 하나,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찾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독자의 진실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비평가의 진실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작가의 진실이기만 하면, 그러니까 작가가 알랑거리거나 유행한테 한 푼 달라고 모자를 내밀지만 않으면 다 괜찮다는 말이다. 나는 다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작가들, 또 현실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 대신 인간이 할 리가 없는 행동을 글로 쓰는 작가들한테는 비웃음 밖에 줄 것이 없다. 형편없는 글은 단지 엉망인 문장과 그릇된 관찰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형편없는 글은 대개 사람들의 실제 행동에 관하여 이야기를 끈질기게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살인자들도 때로는 할머니가 길을 건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후략)

작가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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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그림자 : 미스터 메르세데스 2015-12-08 21: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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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그림자 : 롱 워크 2016-02-24 13:41:03 #

    ... 드는 부분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문장 내에 포함된 walk를 워크로 그대로 번역한 부분이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올해 스티븐 킹을 단 한 권만 읽는다면 이 책은 아닙니다. 《별도 없는 한밤에》를 읽었고, 스티븐 킹 애호가가 아니라면 이 책은 통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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