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어라?"
저녁 무렵에 찾아왔을 때만큼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역시 아까는 해 질 녘이었으니까……."
"봉마逢魔의 때라는 말이 맞네요."

올려다 본 참수지장보살님의 얼굴도 어딘지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계시는 듯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죄인이 되어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ㅡ특별히 깊은 업을 짊어진 사람들의 영혼을 구해 주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한 부처님이 지키고 계시는 셈이지요. 무서워하다니 정말이지 무례하기 짝이 없고 근거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죽은 사람은 모두 부처님이 되는 걸요. 더 이상 나쁜 짓은 할 수 없으니까요.)

살아 있는 인간이 훨씬 더 무서워, 자, 봐, 저기도, 저기도ㅡ고즈카쇼파라 형장 터에는 그런 속삭임이, 은밀한 쓴웃음이 가득차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82쪽-83쪽


이야기가 크게 길을 벗어나고 말았지만, 참배를 한 후에 길가에 있는 후카가와 부동명왕 절의 상가 안에서 '후카가와메시'라는 깃발을 발견하고 우리는 서둘러 미닫이문을 열었습니다. 우선은 점심 식사.

후카가와메시는 채친 무와 종종 썬 파와 모시조개 살을 따로 익혀, 그것을 뜨거운 밥에 국물째 부어서 먹는 지극히 거친 덮밥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가끔 만드는데요, 간장과 미림, 설탕으로 살짝 양념해서 꽤 맛있어요. 『부침』에서는 아키야마 부자가이 후카가와메시를 맛보지는 않지만 '청부업자 바이안' 시리즈에서는 바이안과 히코 시가, 냄비에 끓인 무와 모시조개를 안주로 술을 먼저 마시고, 그 후에 국물을 밥에 부어서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작은 식당에서 맛본 하카가와메시는 전체적으로 간이 강하고(저한테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깍둑썰기한 두부 튀김이 들어 있었습니다. 좀 어리둥절했어요.

"원래 이런 건가요?"

편집장님의 물음에 저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우리 집에서 만들면 모시조개가 더 많이 들어가요."
"그렇겠죠?"

명물이란 세상에 퍼지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겠지요.
297쪽 - 298쪽


미야베 미유키는 간간히 사고 있습니다. 읽기 편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니까 쉬어가며 읽기 좋습니다.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 최초의 에세이라고 해요. 거기서에서 뭔가를 느꼈어야 했는데……1998년 출간작입니다. 특별히 내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본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네요. 주신구라같은 말은 알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냐 하면 모르는 거죠.

원래는 3년에 걸쳐 《소설 신초》의 역사물 특집이 있는 여름호와 겨울호에 실린 기획기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소설 신초》에 부정기 연재하던 '검객 장사' 시리즈의 마지막 권 배경이 미야베 미유키의 고향인 후카가와여서 그 주변을 둘러보는 기획기사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평이 좋아 3년에 걸친 기획물이 된 것인데요. 아무래도 한국인은 모르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주신구라만 해도 그렇고, 하코네 가도라고 하면 일본인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경계를 표현하는 관용어에 가까운 표현인 것 같지만 한국인이라면 썩 와닿지 않지요.

처음의 〈한여름의 주신구라〉가 가장 불친절한 편이고, 나머지 편들은 그냥저냥 읽을 만했습니다. 그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것이겠지요?

조선의 경우는 소수의 엘리트가 완벽하게 짠 시스템 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된 국가이지만, 그와 동시에 융통성 없고, 침잠된 사회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을 보다 보면 생생하고 또 민간인들의 삶이 잘 살아 있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사회적 맥락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의해 한 번 끊겼고, 그로 촉발된 불안정으로 일어난 큰 내전으로 또 한 번 끊겼다 생각하면 더욱 속이 쓰려집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에도의 사회상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낙후되었고, 불편한 점 투성이였을 거에요.

그런 것을 미야베 미유키라든가 작가들이 생생한 색채로 되살려 낸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하곤 합니다. 최근의 사극 인기를 보면 우리나라도 그 단계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정도의 사회 역량이 갖춰졌고, 한류의 유행으로 자신감도 생겼기 때문에 남을 따라 하는 탄성대로 계속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우리 이야기를 하는 시도도 늘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획도 일본인들이 일본의 옛 이야기를 잘 알고 있고, 소설 잡지를 사 보는 유행이 있던 시절 덕분의 이야기겠지요. 요즘 들어 다시 웹소설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유통되는 컨텐츠의 양이 많아지다 보니 사극의 경우에도 좀 더 미시적인 소재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사극 기행 같은 기획기사를 다루게 되겠죠. 여러모로 부러운 기획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이 에세이를 연재하던 시절의 미야베 미유키는 35세 정도로 저와 비슷한 나이인 점이 신경 쓰이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본인에 대한 관심은 없는 편이어서 아는 게 없었죠. 여기서 얼핏얼핏 적힌 미야베 미유키 본인의 이야기를 보자면 본래의 성은 야베, 연재 중이던 35세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았음. 언니가 있고 조카가 둘, 직장 생활을 10년간 한 적이 있음. 구체적으로 어떤 직장인지 언급한 부분도 있었는데 그새 잊어 버렸네요. 연재 당시에 《무당거미의 이치》가 출간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선 최근에 번역되었는데 말이죠.

이런 이야기들이 거리낌 없이 실려 있어서 훨씬 살아 있고 또 뭐랄까 친숙한 분위기의 사람이어서 즐거웠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생각 나는 사람이 있었네요.

모르는 고유명사가 어느 정도 나와도 무시하고 읽을 수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합니다. 또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분께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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