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페리온

아마 트위터에서 추천문을 보았을 거에요. 마침 인터넷 서점에 책이 들어 왔길래 주문했습니다.

몇 번인가 이야기한 기억이 있어요. 저도 글을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책은 어떻게 썼는지 보이고, 어떤 책은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 싶지요. 작가의 내공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느 정도 저보다 나은 작가의 책이라면 "오!" 싶습니다. 그런데, 그 수준을 벗어난 책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이것을 쓸 수 있을지조차 가물가물해집니다.

《히페리온》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히페리온》은 존 키츠와 그의 시들에 바치는 대단한 헌사입니다.

웹이라고 불리는 지구인 연맹이 있습니다. 지구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지구를 떠나 여러 적합한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이 식민지 별 중 하나가 히페리온이라는 이름의 별입니다. 아직은 웹의 정식 일원은 아니지만 지구인의 후손이 살고 있으며 곧 웹의 일원이 될 예정이에요.

이 별에는 특이한 신이 존재합니다. SF의 세계에서 고도로 사유화된 신이 아닌 물질적인 신이 등장한다는 점이 처음에는 이질적이더군요. 슈라이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파괴적인 신으로 자신이 사는 고대의 유적 근처에서 나타나며 순례자들을 살해하곤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 죽는지는 알 수 없어요. 슈라이크 교도들에게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일곱 명의 순례자가 슈라이크를 만나 소원을 이룬다는 겁니다. 단서는, 소원을 이루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게 된다는 거고요.

아우스터라고 부르는 웹 연맹의 적들이 히페리온을 침공하기 직전, 슈라이크 교단에서 일곱 명의 순례자를 지정합니다.

이 책은 그 일곱 명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부, 아이를 안은 아버지, 신성한 나무를 믿는 교단의 고위 성직자, 여탐정, 퇴폐적인 시인, 뻣뻣한 군인, 전직 히페리온 대사. 이들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고, 함께 순례를 떠난 지금도 서로에 대해 거의 모릅니다. 히페리온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 중에 슈라이크 교단에 속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가 순례자인가? 우리는 그곳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머릿 속 의문을 풀기 위해 순례자들은 자기들이 히페리온에 가야 하는 이유를 풀어 놓습니다.

처음에는 마구 쏟아지는 설정들이 혼란스럽고, 한글로 풀어쓴 번역어들이 생소해서 고통스러웠어요. 중반 이후부터는 빠르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연은 모두 아름답지만, 그 중 전직 히페리온 대사의 이야기와 아이를 안은 아버지 이야기는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일곱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어지는 순간 이 책은 끝납니다. 안타깝게도 결말은 다음 권인 《히페리온의 몰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책은 겉보기보다 훨씬 두꺼워서 600페이지가 조금 넘습니다. 그리고 열린책들 책의 조판 특성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더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존 키츠는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지명도가 높은 시인은 아니므로 더 읽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SF 초보가 읽기에 적당한 책도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읽으셔야 해요. 이 책은 무조건 읽으셔야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을 준비를 하셔서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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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그림자 : 별도 없는 한밤에 2015-12-07 16:39:37 #

    ... 다.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한땀한땀 쌓는 과정이 정성스러워서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최근에 본 중에서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고 생각한 책이 몇 권 있었지요. 하나가 《히페리온》 다른 하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였어요. 여기에 《별도 없는 한밤에》를 얹겠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그림으로 치자면 하이퍼리얼리즘 같습니다. 무엇을 썼는지는 상당히 ... more

덧글

  • 夢影 2014/12/04 09:39 # 답글

    리뷰가 멋있어서 사려고 했더니 품절... 일단 주문을 하긴 했습니다만 어디선가 구해주면 좋겠네요. orz
  • sirocco 2014/12/04 18:27 #

    한 번씩 품절되었다가 다른 사람들도 읽어줬으면 좋겠다 하면서 한 번씩 다시 찍고 하더라구요. 저도 얼마 전에 창고분이 나왔을 때 겨우 구했어요.
  • 夢影 2014/12/05 10:20 # 답글

    오오! 다행히 책이 구해져서 배송중이라고 합니다. sirocco님 덕분에 좋은 책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sirocco 2014/12/07 14:13 #

    와 축하드려요! 즐거운 독서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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