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돔

집에 오면 보지도 않으면서 외국 드라마 전문 채널을 켜놓는 게 일입니다. 보통은 켜놓고 컴퓨터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고양이랑 놀거나 하기 때문에 나중에 집중해서 드라마를 볼 때면 봤던 회차인데도, 이런 장면이 있었나? 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언더 더 돔은 AXN 채널에서 방영하는 신작 드라마라고 광고를 하더라구요. 스티븐 킹 원작이라고 하길래 스티븐 킹 원작 영화는 망하거나 드물게 명작이거나 둘 중 하나 뿐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배우들이 괜찮고, 결말을 예상하기 힘들어 급하게 이북을 구매했습니다. 드라마는 곧 2기가 방영 시작한다고 하네요. 책은 3권짜리이지만 영상화 과정에서의 각색이 있어 3기로 안 끝날 수도 있을 겁니다.

처음 책을 켜서 살펴 보고는 스티븐 킹이 이런 문체였나? 하고 갸웃 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스티븐 킹의 문체란 뭘까 생각했고요. 내가 스티븐 킹을 알긴 아는 걸까? 싶었지요. 몇 쪽이 더 지나가고 내가 스티븐 킹을 알긴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에 돔이 생겨나고 일어나는 첫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드라마와 똑같습니다. 당장 영상으로 만들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생생하고 충격적입니다.

소설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이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할애 하고 있으므로 첫 권을 다 읽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남은 두 권은 순식간이었어요. 어떤 이야기가 될 지는 매우 뻔했습니다. 설마 악한의 승리가 되진 않겠지요.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어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 후기에는 "끝까지 가속 패달을 밟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는데 정말이었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어요.

다만 드라마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책을 먼저 읽은 것인데, 책을 보니 인물의 구성이나 이야기 얼개도 꽤 달라져 있어서 결말까지는 드라마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후반까지 밝혀지지 않는 돔을 만든 것의 정체도 드라마에서는 1시즌에서 이미 형태가 드러나고 있으니 돔의 정체까지도 다르게 가져갈 가능성도 있어 보이네요. 원작에서 돔의 정체는 스티븐 킹답지만, 티비 드라마 팬들의 취향에 맞을 지도 의문이고요.

“우와! 꼬마야, 너 완전히 산전수전 다 겪었네!”

“지금도 겪고 있어.”

그 말이 몸 속 어딘가 있는 밸브를 돌리기라도 한 듯이, 올리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땅에서 일어나 돔으로 걸어갔다. 올리와 젊은 군인은 한 발짝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았다. 군인은 한쪽 손을 돔 위로 쳐들다가 채찍처럼 스쳐가는 짧은 충격에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쫙 편 채로, 돔에 손을 얹었다. 올리도 반대편에서 돔에 손을 갖다 댔다. 두 사람의 손은 맞닿은 듯이 보였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은 듯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튿날 몰려온 방문객들이 몇 번이고 반복할 허망한 몸짓이었다. 수백 번을, 수천 번을.
《언더 더 돔 3권》


이하에는 책의 내용을 자세히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에 갑자기 돔이 생겨서 아무도 나갈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좁은 메인 주의 시골 마을은 한국의 폐쇄적인 시골 마을이 그렇듯이 마을이 제 것인 줄 아는 유지들이 좌지우지 하고 있고요. 그게 문제의 시작입니다. 이 책은 〈미스트〉의 장편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자기 위주로 해석해서 믿는 사람들과 이성적인 사람들의 대결. 물론 기독교라는 것도 자기들의 편리한 도구일 뿐이지요.

제가 늘 마음에 담고 있는 경구 "악이 취하는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지만, 그 형태의 배후에 숨겨진 악은 이데올로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일 년에도 몇 번이고 제 마음을 울리곤 합니다. 그런 일은 몹시 흔합니다. 이때 흔들리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악한 거지, 그가 믿는 종교 자체가 악한가 하는 것은 또 깊이 생각할 부분입니다. 그런 생각은 이런 픽션을 통해서 알기가 더 쉽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악한들 그 어디에서 신의 뜻을 찾을 수 있겠어요?


P.S. 미국 시골 도시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최근에 뉴스 페퍼민트에서 소개한 해리포터와 금지된 책들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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