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전략)
〈중외일보〉1925년 6월 7일자 1면 머리기사가 잘 보여주듯 다산多産 때문에 '생지옥'이 되어버린 한반도의 일반 가정은 산아제한을 안 할 수 없는 처지였다. 1920~1940 사이에 경제활동 가능 인구의 24.3%만 고용 기회를 얻은 상태에서 한 여성이 평균 6명의 자식을 낳다보니 가정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그러다 보니 군입을 덜기 위한 낙태, 기아棄兒, 영아 살해까지 자행되곤 했다.

빈곤과 실업이 한데 엉겨 가정이 엉망이 된 데다 인구는 수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우생학적 인식이 퍼지면서 산아제한에 대한 관심은 커져갔다. 신문과 잡지들은 산아제한을 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알려나갔다. 경제적 빈곤을 완화하고, 자녀 모두를 충실하게 양육하고, 열등한 자녀를 낳지 않고, 모체를 건강하게 하고, 출산과 육아 부담을 덜어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아이를 덜 낳자는 게 요지였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13쪽-114쪽

산아제한론은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일제의 인구정책과 정면충돌했다. 일제는 조선을 합병할 때부터 다산을 적극 옹호했다. 식민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 현장과 전쟁터에서 필요한 인적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제가 서구식 보건의료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산 못지 않은 다사多死 풍토를 해결함으로써 사망률은 낮추되 출생률은 높여나가고자 했다. 그 결과 1910년 이전만 해도 연평균 0.2~0.3%를 유지하던 인구 증가율은 2%선으로 뛰었다. 인구의 자연증가 속도는 7~10배 빨라졌다.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였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18쪽

중일전쟁(1937)의 발발로 본격적인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인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산아제한을 금지하고 암묵적으로 다산을 장려하던 일제는 노골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인적 자원에 관한 업무를 담당할 기관으로 우생국까지 신설했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23쪽

1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독서를 시작했더니 또 머리가 굳은 것 같습니다. 도구들에 생각을 지배 당하는 것인지 단문으로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익숙해지지만, 장문을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 감상문을 쓰기 위해 몇 일이나 에버노트를 껐다켰다 했으니까요.

이 책은 쉬엄쉬엄 3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주제에 따라 여러 광고를 묶어서 보여주고, 총 22가지 테마로 한 테마는 10여쪽 내외이므로 짧게 짧게 읽을만 합니다. 본래는 신문의 기획 기사였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만 해도 일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일제시대라고 하면 막연하기만 하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국사 시간을 거치면서 분노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건 그것 뿐입니다. 열렬한 독립 운동의 앞면에는 민중의 삶이 있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아마도 덜 격렬한 만큼 덜 관심이 가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나이를 먹으니 소소한 삶에 관심이 생깁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제 시대가 더러워도 밥은 먹어야 하고, 물 건너에서 유행한다는 신식 간식이 나왔다고 하면 그런 것도 관심이 갑니다. 돈이 없어도 라디오라는 것이 나왔다고 신문에서 말하니 한 번쯤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신녀성들이 백화점에 가서 한껏 구경하고 다방을 간다고 하니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비웃는 것도 꽤 역사가 깊은 일이더군요.

민중은 그런 것들을 신문으로, 광고로 알음알음만 합니다. 계산을 해 보면 이런 신문물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분명 있었고요. 뭐 친일파로 살면서 호의호식 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겁니다. 일제 덕분에 이런 재미도 보고 했겠지요. 그러다 보니 일제 시대의 경제 성장만 눈에 보이나 봅니다.

광고란 꽤 사회를 비추는 것이더군요. 재미있었습니다. 모리나가라든가 아지노모토 같은 이름들이 벌써부터 등장하는 걸 보면 씁슬하기도 하구요. 가볍게 읽을만한 근대사 책이 필요하시다면 추천합니다. 저도 여기서부터 가지를 뻗어나갈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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