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토니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앱을 통해 읽은 두 번째 책입니다. 처음으로 본문의 밑줄긋기 기능을 사용해 보았어요. 나중에 모아서 밑줄 그은 페이지만 다시 열어볼 수도 있고, 밑줄의 모양도 정말로 형광펜으로 그은 것처럼 예쁘게 그어지는 점이 참 마음에 듭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이 책이 얼마나 두꺼운 책인지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나중에라도 이 부분이 보완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라고 해도 두꺼운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출퇴근할 때 앱을 켜고 책들을 읽어 보려고 뒤적였지만 집중해서 읽기는 힘들었어요. 제 마음이 복잡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세계문학 앱이 지원하는 많은 책 중 《나의 안토니아》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정하고 아름다운 문체 때문입니다.

이 책은 네브라스카를 개척하는 다인종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화자 짐 버든이 40대의 나이까지 안토니아와 그녀에게서 뗄 수 없는 네브라스카의 고향 마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안토니아라는 여자아이를 떠올릴 때면 그의 어린 시절과 광막한 농장이 연달아 나타나는 그런 이야기여요.

저는 한 번도 이야기를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으면서도 책을 읽을 때면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나의 안토니아》를 읽는 동안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다정함과 솔직함, 사랑을 담는 것은 도저히 힘들 것 같아요. 기발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사랑을 엿보는 것으로 충분한 독서였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추천합니다.

이하의 인용문은 책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책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식탁 주변에 모여 등불 아래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던 제이크와 오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목구비가 하도 엉성하게 생겨서 어찌 보면 만들다가 만 것처럼 보이는 제이크의 얼굴. 한쪽 귀는 절반이 잘려 나가고 뺨에 있는 끔찍한 흉터 때문에 꼬부라진 콧수염 밑에서 윗입술이 흉측하게 뒤틀려 보이는 오토의 얼굴. 그 얼마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얼굴들이었던가! 거칠고 난폭하다는 그 자체가 오히려 그들을 무방비하게 만들었다. 앞에 내걸고 상대방이 근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예법이라는 것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세상에 맞서는 유일한 수단이라고는 자신들의 억센 주먹 뿐이었다.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는 떠돌이 노동자로 이미 낙착 지어진 오토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을 그 얼마나 사랑했던가!
76쪽

(전략) 쉬메르다 씨의 무덤은 한 번도 손질한 적이 없는 기다란 붉은 풀에 덮여 마치 작은 섬 같았다. 황혼 녘이나 초승달이 비칠 때나 별들이 빛나는 맑은 밤하늘 아래에서 보면 먼지투성이의 그 길은 섬을 따라 흘러가는 연한 회색빛 강물처럼 보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을 무심히 지나쳐 본 적이 없었다. 그 넓디넓은 땅에서 나에게는 그곳이 가장 정다운 장소였다. 죽은 이의 혼을 위로해 주려는 마음에서 바로 그 자리에 무덤을 파게 했던 미신이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못지않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차마 측량된 경계선대로 도로를 내지 못하고 무덤을 약간 비켜 나간 그 마음씨와, 해가 진 후 덜거덕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들이 지나는 그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피곤한 몸으로 그 나무 십자가 곁을 지나가는 마부라면 그 밑에서 잠들어 있는 이에게 평온한 안식을 기원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리라.
105쪽

7월이 되자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평야를 세계에서 최상의 옥수수 지대로 만들어 주는 찌는 듯한 독한 더위가 찾아왔다. 밤이면 옥수수 자라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빛나는 별빛 아래 털이 난 푸른 옥수수 대가 싱싱하게 늘어선 옥수수밭은 이슬에 젖은 향내를 풍기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120쪽

그는 옛날 사람들의 삶을 마치 푸른 배경에 그려 놓은 하얀 형체처럼 남한테 선명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패스텀에 있는 바닷가 신전에서 홀로 보낸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의 표정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지붕 없이 서 있는 기둥들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늪지 풀꽃 위로 나지막하게 날아다니는 새들, 구름 낀 은빛 산맥이 끊임없이 보여 주는 갖가지 빛을 묘사하던 그의 표정을. 그는 외투와 무릎 덮개로 몸을 감싸고 밤하늘의 별자리가 서서히 바뀌어 <늙은 티토노스의 신부>가 바다에서 솟아오르고 먼 산이 새벽녘에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 짧은 여름밤을 바닷가에서 일부러 지새웠다. 그리스로 출발하려던 전날 밤 몸져눕게 만들었던 열병도 실은 그 바닷가에서 걸린 병이었고, 그로 인해 나폴리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앓아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은 그때까지도 그 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221쪽

레나 린가르드!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다정하기 그지없는 여인이었다.

「그때 내가 널 찾아갔던 거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그러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었어. 난 내가 너의 첫사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 넌 정말 재미있는 아이였어!」
슬프고도 현명하게 상대방을 영원히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듯이, 마침내 부드럽고도 아련한 키스와 더불어 레나는 나를 떠나보냈다.
247쪽

한 소년이 열 살 때 열네 살 먹은 한 소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 <마음에 들어 하는> 그 마음은 소년이 중년의 신사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잔잔하고 애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나의 안토니아』 안에 들어 있다. 읽는 이가 이 작품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까닭은 초원의 황폐함과 숭고함이 이 사랑을 요약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313쪽 <역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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