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이 책은 기억나지 않는 옛날에 사두었습니다. 아마 학부생이거나 학부생이었던 적으로부터 멀지 않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2001년 프랑스에서 출간되고, 한국에는 2002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걸 지금까지 읽지 않고 있다가 어서 읽고 중고책방에 팔아넘길 생각으로 골라내었지요.

지금 읽어서 나쁜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10년 지난 지금도 이 책의 지적들이 유효하다는 점이 입맛을 나쁘게 하지요. 촘스키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런 사실에 절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공황의 때인 1928년에 태어나 2차 세계 대전을 겪었고,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의 이념 전쟁을 모두 겪었지요. 현대 시민 운동의 역사와 함께 하며 지식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85세의 노학자에게 지금 세계에 일어나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하워드 진이 꾸준히 희망을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놓고 보면 우리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더라도 10년 후, 20년 후에 틀림없이 앞서 나가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정치에 절망하고 있고, 그런 의견이 절반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우리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양이가 욕조에 빠뜨려 쭈글쭈글해진 책을 이토록 열심히 읽는 이유는 그런 희망과 앞으로 유지할 태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너무 신경증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들을 의심하는 것이 불편하게 여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티비를 켜면 나오는 광고와 티비 방송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가이며, 그러므로 그 결정들이 자본을 옹호하는 방향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삼성이 원하지 않는 것은 뉴스에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지요. 지금 와서는 대통령보다 이건희가 더 권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하지만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미국에서 기권표의 증가는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 표명으로 해석됩니다. 정치적 선택의 폭이 유럽에 비해 좁은 것도 문제이지만, 몇 년 전부터 선거제도 자체에 의혹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는 여론조사의 사회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업계가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론의 흐름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게다가 매년 여론 조사 때마다 똑같이 묻는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대체로 국민의 절반 정도는 "정부는 국민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대답합니다.
레이건 시절에는 80퍼센트의 국민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응답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정부를 복마전伏魔殿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기업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도 80퍼센트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57-158


극우파의 준동이 우려되지는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경우 극우적 행태가 상당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독교 근본주의가 세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우를 같은 범주에 놓을 수 있을가요?

물론 둘은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 볼 때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우는 같은 종류의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력감에 대한 반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 해석됩니다. 나라마다 다른 형태를 디고 있지만 원인은 하나입니다. 파시즘도 이런 좌절감에서 태동된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유태인, 아프리카인 모두가 우리를 해치려 할 뿐이다…그런데도 정부는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주지 않는다. 우리 가치관이 위협받고 있다…."
우익은 언제나 이런 위기감을 적절히 이용해 왔습니다. 미국의 준군사적 민병대도 이런 토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클라호마 시티의 연방건물을 폭파시킨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도 60년 전이었다면 산업별노동조합(CIO)의 투쟁에 열성적으로 가담했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자식마저 여러분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어딘가에 강력한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적이 바로 연방정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라고 목청을 높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맥베이가 대기업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국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ㅏ다. 우리는 그렇게 세뇌당해 있습니다.
159-160


다시 같은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혁명까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특권을 누리는 지식인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반체제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지식인이 있다고 합시다. 적어도 법치국가인 우리 사회에서 목숨까지야 잃지 않겠지만 적잖은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중상모략과 비난이 빗발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면 그가 택할 길은 하나뿐입니다. 반체제운동을 포기하는 길입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주변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어떠냐고요? 나야 괜찮습니다. 특권층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런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는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합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69-171

읽을 수록 생각이 복잡해지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혼자가 아니고, 이런 상황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책입니다. 내용은 인터뷰를 채록한 것이므로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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