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과 투자자는 '실질적인 의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밑줄긋기

베를린 장벽의 붕괴, 테크놀로지의 발달, 금융거래의 가속화 등이 자본주의의 성격을 확연히 바꿔놓았습니다. 이 엄청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과거의 기준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지금까지 그 진실한 모습을 충실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현실과 이론간의 괴리가..

(전략) 브레턴 우즈 협정은 자본의 흐름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날 즈음 영국과 미국이 브레턴 우즈 체제를 창설했을 때만 해도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회민주주의적 이상, 달리 말하면 복지국가를 세우기 위한 열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자면 자본의 이동을 규제해야 했습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서 제멋대로 이동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언젠가 금융 기관과 투자자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까지 올라서게 될 것이란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는 '실질적인 의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실체도 없는 그들이 자본을 회수한다거나 그 밖의 다른 금융조작으로 국가를 위협하면서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브레턴 우즈 체제는 자본의 흐름을 규제하고 악의적인 투기와 자본 유출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교환율을 조절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을 지켜낼 방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체제가 1970년대 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민간 기업, 특히 금융자본이 대대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자본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금융자본의 이동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현상이 전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왜곡되고, 실질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조건도 악화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자본 회수라는 위협으로 국가정책을 좌우할 정도로 금융자본의 힘이 막강하다고 주장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략) 이 모든 것이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전역에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쇠퇴하고 실질임금은 답보 상태에 있거나 줄어들었으며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예외가 없지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경제지표가 불건전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성장률과 생산성, 투자가 줄어들었습니다. 이자율이 상승하면서 성장의 걸림돌이 되었고,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금융 위기가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일부 분야의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나라의 국민에게도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84~86쪽


테크놀로지의 혁신에 탈규제화가 더해지면서 경제체제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전략)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합니다. 세계 경제를 끌어가는 동인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금융시장을 설명하려 제시되는 경제 모델은 거의 매년 바뀝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경제 모델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현재의 금융시장이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aynes의 이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금융시장은 집단 행동, 즉 부화뇌동적 특징을 띱니다. (하략)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91쪽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시대의창

이 책은 2002년 프랑스의 두 인터뷰어가 촘스키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은 생소하지 않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연속된 시간의 선에 있으므로 과거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고, 현재를 미루어 보면 미래를 예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과거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사를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매우 얕은 편이어서 그 쪽으로도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할 뿐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수 년 전에 사 놓은 것을 겨우겨우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책이어서 다행입니다.

예전에 이글루스에서 촘스키를 노망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명예욕에 가득찬 늙은이 정도로 취급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책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런 평가는 잘못되었어요. 노암 촘스키는 언어학자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지만, 그가 훌륭한 언어학자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하여 그 흐름을 추측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단지 오지랖에 넓어서 그러거나, 음모론에 심취하여 헛소리를 하는 노인네가 아닙니다.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언젠가 한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지금 이 밑줄긋기는 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하여 작성 중입니다. 패드에서 《》 기호를 어떻게 입력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간단한 정도의 편집은 이 두 조합으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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