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1784) 봄이었다. 정조 임금이 성균관에 와서 대학생들에게 직접 과제를 내렸다.
“짐이 침전에서 밤늦게까지 《중용》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었다. 대략 70가지가 된다. 이들 의문점을 내릴 테니 각자 답변을 제출토록 하라.”
선비의 스승을 자처한 정조로서는 이런 시험이 자연스러웠다. 문답은 다음과 같았다.
정조가 묻는다.
중용의 뒷장에 ‘고로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의 길로 간다(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마땅히 음미하고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왜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의 길로 가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답변을 제출했다.
덕성은 하늘의 덕입니다. 어찌 이를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학문이란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업입니다. 군자라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덕을 받드는 자는 감히 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인을 따릅니다. 임금의 명을 받드는 자는 감히 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억과 은혜를 베풉니다. 그 뜻이 이와 같습니다.
정조가 또 묻는다.
덕성을 높이고자 해도 자질이 부족하다. 학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가? 학문을 하려고 해도 잡고 나갈 바가 없을까 두렵다.
나는 또 답변을 내놓았다.
어떻게 자품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학문하는 사람들은 효제충신(孝弟忠信)으로 근본을 삼았습니다. 그런 뒤에 시서예약으로 문채(文采)를 이루었습니다. 어찌 잡고 나갈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조는 조정 중신들과의 경연 자리에서 “성균관 유생들의 답변은 모두 거칠었지만 오직 정약용의 대답만 눈에 띄었다. 그는 분명히 식견 있는 젊은이일세”라고 칭찬했다. 나의 자부심이 어떠했겠는가?《매혹》 최보식, 휴먼&북스
소재는 좋지만, 작가가 픽션을 쓰는 것이 처음인지 시점이 오락가락 합니다. '나'로 표시된 정약용이 노년에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는 것으로 꾸며져 있지만 전지적으로 본인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거나,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문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이벽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정약용 시점에서 보는 것은 좋았으나 실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추천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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