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의 광고 문구가 ‘바람 구두’를 신은 당신, 카뮈와 지드의 나라로 가자!라고 적혀 있었기에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 사이트를 운영하는 운영자가 낸 여행기인 줄 알았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전 안 샀을 거예요.

저자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와 현재 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런 분이 알제리에 가고 싶어하다니 이상한 일이죠. 그 이유는 알제리가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거기에서 살던 하층민 출신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절실한 팬이기 때문이어요.

제 세 번의 여행은 모두 그 나라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여행하기로 결심을 했었지요.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생각해 보면 영국 여행은 순전히 영국 배우를 보러 갔던 거긴 합니다만...그래서 그 흔적을 따라가며 그 흔적이 남았음에 기뻐하고 사라졌기에 슬퍼하는 그런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인상적인 문장이나 생각들이 더러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저자가 알제리에 가진 마음때문에 불편해서 읽기 힘들었습니다. 저자가 알제리를 보는 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수첩을 펼쳐보니 그때 흥분한 기분으로 휘갈겨 써놓은 몇 줄의 메모가 눈에 잡힌다.

“알제리는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라다. 민족주의와 알라 타령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쓰레기를 치울 것이며 짓다가 만 집들을 완성하여 고운 회벽을 발라 정다운 마을과 도시를 만들 일이다. 황량한 집 앞에 나무를 심고 부겐빌레아 넝쿨을 올려 물을 줄 것이며 사람을 만나면 허황된 잡담을 늘어놓는 대신 묻는 말에 정확하고 친절하게 대답할 일이다. 자신의 호텔을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커다란 대장에다 거짓말로 써도 확인할 길이 없는 손님의 아버지 어머니 이름까지 써넣게 하는 요식행위에 무작정 매달리는 대신 방과 복도와 욕실을 깨끗이 수리 청소하여 보다 높은 객실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거리와 실내와 복도 곳곳에 가짜 플라스틱 꽃과 식물로 야비한 장식을 즐겨하는 대신 작은 풀이라도 화분에 심어 살아 있는 꽃을 피워볼 일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기분이 그랬을 뿐, 과연 내가 남에게 충고하고 한 수 가르쳐줄 입장이기나 한 것인가? 다만 바라건대 오랜 내전이 이제는 완전히 끝나고 느긋하게 새로운 삶을 설계할 여유가 이들에게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239~240, 김화영


이런 마음으로 여행한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기분이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카뮈와 지드가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비추천입니다. 이 책은 알제리를 여행하고 싶어한 사람이 쓴 여행기가 아니예요.

제가 읽은 얼마 되지 않은 여행기 중에 두 권이 벌써 이런 내용이니 이런 투덜투덜 여행기는 생각보다 많은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두 권 다 책에 적힌 행로를 따른 여행기로군요. 앞으로 책을 살 때는 좀 더 살펴 보아야겠어요.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공기와 꿈》에 책 커버를 씌워 준비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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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요 2012/02/06 11:03 # 답글

    여행기 중에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걸로 <나를 부르는 숲>과 <찰리와 함께한 여행>,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먼북소리>가 있습니다. 참고하시라구요.
  • sirocco 2012/02/06 16:54 #

    추천 감사합니다. 다음 구매 때 고려할게요!
  • 2012/02/06 11: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irocco 2012/02/06 16:54 #

    네. 오랜만에 검색해 보니 사이트는 운영하지 않는 것 같은데 티스토리 쪽에서는 최근까지 갱신이 있더라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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