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라이어

예전 블링크가 한참 유행할 적에 그냥 뻔한 성공학 책인 줄 알고 지나쳤다가 뒤늦게 읽고 후회했었죠. 이 작가는 참 잘 쓴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노정태씨가 블로그에 곧 책이 나온다고 글을 남겨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던 것을 이제서야 읽었네요.

이 작가는 대단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노정태씨 역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읽을만한 책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증명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에게는 잘 먹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이 책은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사나이가 엄청난 고행을 거쳐서 무림 고수가 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의 스승은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했는지, 눈을 감고도 적의 움직임을 꿰고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을 단련했기 때문에 상대가 뭘 할지 예상할 수도 있는 지경이지요. 이게 바로 저자의 전작인 《블링크》의 내용입니다. 직감은 중요하고, 그 중 더 중요한 직감은 오랫동안 단련된 전문가의 직감이라는 거죠. "아 뭐야, 이 이야기 아는 이야기잖아." 할 수도 있는데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지루하지 않게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의 경우도 한국인에게는 "아 뭐야, 다 아는 이야기잖아." 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재능보다는 노력과 환경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뭐냐 하면 맹모삼천지교 같은 이야기죠, 에헴. 맹모삼천지교가 그러니까...검색을 해보자면 위키백과에는 맹자가 기원전 372년에 태어났다고 적고 있군요. 진짜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노력하면 되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는 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의 벽걸이로 유행했던 문구가 "하면 된다"였어요. 저도 매일 그런 벽걸이를 보며 자란 탓인지, "하면 되지 안되는 게 어딨어?"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진 편이고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인의 능력과 공간적 환경, 거기에 더불어 시간적인 환경의 중요성도 저자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블링크에 비해서는 "그래서 어떻단 말이지?"라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긍정적인 분들은 이 책에서1만시간의 단련만을 중요시하고 계시던데(물론 결론도 그렇게 보려면 볼 수 있겠지만요), 이 책의 전반부인 환경의 중요성과 후반부의 노력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부분이 제게는 아무래도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요.

시간적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저도 죽 생각을 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게임업계의 유명한 개발자들의 공통점을 묶는다면, 특정한 시기에 하이텔 등지에서 통신을 통해 활동하던 네임드들이랍니다. 제 친구 헤이와 대화 중에 들은 정보를 떠올려보면 대략 89년 무렵,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이 있었고, 90년대 중후반 무렵 전화선을 통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이 활성화 되었고, 젊고(어리고?) 컴퓨터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모여서 의견을 주고 받고 기술을 갈고 닦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역시 PC통신을 통해 게임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어 기획자가 되었고, 제 주변의 기획자들 중에도 그 당시 PC통신에서 닉네임을 들어봤다거나 친구 아는 사람, 같은 커뮤니티 소속했던 전적이 있다는 등 그 당시의 PC통신이라는 환경이 지금의 게임계의 형성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어떤 환경이 어떤 결과를 불러온다는 환경결정론적인 태도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동일한 커뮤니티에서 토론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성공적인 게임 개발자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토론자 중에 직업으로 게임 개발자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게임 개발자가 되려고 하고, 노력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많이 있거든요.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뽑아서 그 사람의 성공 요소를 모은다면 분명히 이와 같은 책이 될 겁니다. 하지만, 실패한 사람의 실패 요소를 모아도 이와 다를 것이 없는 책이 될 것 같아요.

또한 9장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를 읽어보면 KIPP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는데 그 모습은 한국의 교육 환경과 흡사합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앉혀서 강도 높은 교육을 시키고 엄청난 과제를 제출하게 하여 대단한 학업 성취도를 얻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물론 높은 학업 성취도 ->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 -> 더 다양한 직업 가능성 획득 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KIPP와 같은 커리큘럼이 정규 학제로 적용된 한국에서는 그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는 거죠. 조지프 히스의 표현을 빌려 모두가 BMW를 가지고 있으면, BMW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경쟁체제에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비교되어서 못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거죠. 모두가 똑같이 수학을 잘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줄 수 없어서 3장 〈위기에 빠진 천재들〉처럼 결국은 추첨을 해서 기회를 줘야 하고, 그렇다면 1만 시간의 수련따위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개개의 사례에 대한 분석은 납득할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면 잘할 수 있을 것이고, 단련을 통해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동의합니다. 하지만 기회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도대체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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