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SF 독자의 길을 걸은 것이 아마도 6년 정도, 통신의 도움으로 SF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다니는 동호회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그 사람들의 세계가 너무 커서 스며들기 쉽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도 제 SF 취향은 대중적인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면 몰라도 레이 브래드버리와는 연이 닿지 않았지요. 2006년 당시 직장 동료이던 분이 절판된 《화성 연대기》를 구해서 제게 빌려주셨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그 분에게서 《화씨 451》에 대해서 듣고서는 한참 별렀어요. 드디어 나왔네요. 황금가지, 고마워요.
아쉽게도 이 책은 《화성 연대기》만큼 꼭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다른 분의 감상평을 참고하자면 함께 나온 《민들레 와인》이 《화성 연대기》와 유사한 분위기일까 싶어요.
명작이다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이 이야기는 B급 SF영화 등에서 많이 차용되었기 때문에 낯익은 부분이 많아서인지 조금 식상하더라구요. 특히 많이 기억난 것은 《이퀼리브리엄》이네요. B급이라 까이는 영화이긴하지만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라 그럴까요.
뭐 딱히 이렇다저렇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책이예요. 《화성 연대기》를 기대하고 봐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이 책에서 언듯 그 분위기가 나타날 때가 좋았거든요. 아쉽지만 《민들레 와인》을 기대할래요. :)
"(전략)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문득 깨달았다오. 내가 우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하셨던 그 모든 일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할아버지는 이제 그런 일을 다시는 하지 못한다. 나무로 조각을 할 수도 없고, 우리가 뒷마당에서 비둘기를 기르는 일을 돕지도 못하고, 바이올린 연주도 못하고, 농담도 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날 울린 것이지. 할아버지는 우리의 일부였고,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행동들도 전부 죽어버린 거요. 어느 누구도 그분이 하시던 대로 그 일들을 해내지 못하오. 할아버지는 중요한 사람이었소. 난 여태까지 그분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오. 가끔 생각하지. ……(중략)……할아버지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고, 세상에 많은 일을 해놓으셨지. 그분이 돌아가시던 날 밤 이 세상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오."237-238쪽
문 : 오늘날 가장 위험한 형태의 검열은 어떤 것일까요?
답: 미국에는 없습니다. 검열을 할 수 있는 그룹들이 너무 많아요. 가톨릭도 있고 유태교에다 신교도, 또 공화당과 민주당도 있지요. 여성 해방운동가에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청소년과 성인……우리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으니, 결국 검열이란 사실상 없습니다. 문제는 바보 같은 TV입니다. 지역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죽처럼 흐늘흐늘해질 것 같아요.269-270, 작가 인터뷰 중에서




덧글
SF 초보가 입문하기 좋은 책은 평소에 책을 곧잘 읽던 사람이라면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정도가 어떨까 싶어요. 단편집이기도 하구요. 어렸을 때 하인라인을 열심히 읽었는데 지금 집에는 한권도 없네요.
어슐러 르귄의 판타지를 곧잘 읽었다 하시면 헤인 연대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로캐넌의 세계》, 《유배행성》,《환영의 도시》순으로 있는데 옴니버스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읽어도 돼요.
곧 영화로 나오는 SF가 또 하나 있는데 《라마와의 랑데부》예요. 입문으로는 어떨까 모르겠는데 SF라는 장르의 배경적(우주) 장대함을 느끼기에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