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를 읽다가 아무래도 진도가 나가지 않길래 혹시 앞 시리즈가 있지 않을까 확인해 보니 역시 가장 먼저 출간된 건 이 《우부메의 여름》이었어요. 어쩔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순서대로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도 빌려왔지요. 이쪽은 한 권이기 때문에 《망량의 상자》보다는 부담감이 적었어요. 적당한 속도로 읽었다면 적당한 속도이지만 《우부메의 여름》은 《망량의 상자》가 가진 단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어서 읽기 힘들었어요.

《망량의 상자》도 90여쪽 읽었을 뿐이라, 이 소설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하면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책에 대한 인상은 이렇습니다.

일단 형태는 미스테리예요. 이상한 사건이 있고, 탐정역과 조수역도 있습니다. 탐정은 카우치형으로 나서지 않아도 왓슨이랄까 조수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으로 조수가 아무리 날뛰어도 탐정의 손아귀예요.

탐정은 이 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한 약칭 교고쿠도, 조수는 소심한 작가인 세키구치예요. 실제 직업이 탐정인 등장인물도 있고 형사인 등장인물도 있지만 《우부메…》에서는 그다지 활약하지 않으니 일단은 접어둘께요. 화자인 세키구치는 아무리 좋게 표현하려고 해도 호감가는 인물이 아니예요. 고등학교 시절에 울증이 있었고, 안으로 박히는 성격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우울한 인간이라서 상종 못하겠다는 뜻은 아니랍니다.

이 캐릭터는 독자를 대신해서 탐정의 설명에 "그래서 그건 무슨 뜻인가요?"하고 물어주는 사람인데요……탐정을 다그치는 타이밍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요. 뭐 이 이야기 자체에서 "사실은 이런 사정이 있어서……."라는 식이지만 그런 사정도 단순히 엽기적일 뿐으로 꼭 납득이 가지 않기도 하구요.

조급증이 있는 이 화자는 왓슨과 달리 "맞아맞아 어서 대답하라구!"하는 공감대가 도저히 형성이 되질 않아요. 비밀을 가진 왓슨이라니 영 별로지요. 탐정인 교고쿠도의 캐릭터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보지는 않았지만 생긴 모습을 떠오르는대로 말하자면 《절망선생》의 주인공을 닮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 친구 장광설이 길단 말이죠. 《망량의 상자》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후, 사건 해결을 위한 진행은 전혀 되질 않고 교고쿠도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한 잔소리를 20페이지가 넘도록 늘어놓는단 말이죠. 시끄러워요.

등장이 적은 형사 기바나 탐정 에노키즈, 교고쿠도의 동생인 아츠코 등은 호감인물이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이랍니다.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요. 《망량》도 그렇고 《우부메》도 그렇고, 일단 엽기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지요. 《우부메》는 구온지 가문 둘쨋 딸의 남편이 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에 이 둘쨋 딸은 남편이 실종되기 전에 임신을 한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남편이 실종된 20개월이 지난 지금도 해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한 현상을 덧붙여 놓았죠.

남편이 밀실에서 사라졌다는 사건 자체는 미스테리다운 사건이라 흠잡을 데가 없죠. 하지만 아무래도 이 구온지 가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영 찝찝하단 말예요. 그것이 이 시리즈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독특한 점이라고 주장한다면 납득은 하지만 이글루스에서 어째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납득하긴 좀 어렵거든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책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은 얼음칼님이 종종 쓰시는 "일본소설의 변태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냥 실종되는 걸로는 안되었을까? 랄까. 일이 이런 식으로 꼬이게 된 원인이 기분 나빠요. 이야기 얼개 내에서 납득은 가지만 읽고 나면 뒷맛이 더러워요. 네, 그 정도는 알고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뭐 이 책에서는 일단 '사건은 해결되었다'이라는 식으로 끝을 내지만 이걸 해결이라고 해야 할지요. -_-


더해서 기분이 나쁜 건 전 시리즈는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거든요. ...이 시리즈 많네요. ... ...아.

덧글

  • 夢影 2009/10/14 09:35 # 답글

    저도 아직 안 읽었지만... 에노키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백기도연대 시리즈도 있습니다. ㅇ,ㅇ 에노키즈에 호감이 있으시다는 말씀에 읽지도 않은 책을 살그머니 추천해봅니다.
  • sirocco 2009/10/15 14:33 #

    역시 인기작으라 답글이 많네요. ^^ 어제 감상을 쓰면서 쭉 보니 책이 여러 권 있더라구요. 번역자가 다른 모양이라 좀 염려는 되지만, 에노키즈가 주인공이라고 하시니 흥미가 동하네요.
  • 카방글 2009/10/14 15:37 # 답글

    독자 교육시키는 과정이 이렇게 긴 소설은 처음 봤습니다orz
  • sirocco 2009/10/15 14:33 #

    ...그죠. ...이유도 알겠고, 필요한 것도 알겠지만...아...시끄러워요.
  • C문자 2009/10/14 17:24 # 답글

    작가가 잡설을 풀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 sirocco 2009/10/15 14:34 #

    그 잡설을 풀려고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으니 뭐 할 수 없는 노릇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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