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를 읽고 있습니다.《에덴의 용》에 대해서 쓰고 싶은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보단 이걸 먼저 쓰게 되네요. 쓰고 싶은 부분 찾는게 다시 한 번 읽는 정도의 에너지가 소모될 듯 하여.;

사실 전 촘스키를 잘 모릅니다. 언어학자로는 아주 조금 알죠. 기억은 안나지만 뇌 어딘가에 저장돼 있을 겁니다. 전 어문대 학생이었고, 아이들에게 어학을 가르치는 법을 공부하고 있었으니까요. 대학에 오기 전에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름 정도는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가 이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인 한 원로 지식인과 친밀도가 높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전 언어학 수업을 들어갔다가 바로 도망나왔습니다. 분명 한국어로 강의했습니다만 외국어로 듣는 기분이더군요. 외대에선 수준 높은 언어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인문학의 정수님은 새침하셨어요.;

지금까지 제가 알던 촘스키는 진보인사(?)이고, 9.11 이후, 미국의 양심을 이야기한 지식인이라는 정도입니다. 그게 다예요.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쨋거나 미국인이고 한국에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매일 뉴스에서 보게 되진 않거든요. 촘스키에 대한 책도 많지만 '어서 와, 아기양들'이라고 써붙인 책은 아니라서 아무래도 사는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 제가 어째서 갑자기 촘스키를 다룬 책을 사게 되었느냐 하면 yes24 +1 행사 페이지엘 들어갔거든요. 선착순 행사이고 행사가 시작된게 4월 20일인데, 아직도 책이 남아 있다는게 좀 충격이었습니다. 저라도 사야할 것 같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결제를 했죠. 고백하자면 사실 어떤 책인지도 몰랐답니다.

지난 구매 목록 소설들이 하나같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서 소설은 쉬자고 생각하고 집어든게 촘스키입니다. 책은 디자인도 아름답고(?!) 구성도 잘 돼 있습니다. 번역도 적당. 다만 삽화같은 경우는 좀 흐름을 끊는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행간이 넓고 글씨도 커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거슬립니다. 담고 있는 내용이 매우 많기에 생각할 여유가 그 행간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매우 좋게 생각해서요. 그러고 보면 《에덴의 용》도 행간이 너무 넓었죠. 독자는 바보가 아닌데 이런 건 좀 가슴에 손 얹고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표지의 사진은 제가 아는 촘스키의 얼굴과는 좀 다르네요. 제가 아는 얼굴은 끼워준 책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표지에 있는 거네요. :)
(우측이 제가 아는 얼굴)

1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 책은 강연 등에서 청중의 질문에 대답한 것을 모은 책입니다. 1권 같은 경우는 89년 강연 등을 다루고 있어서, 너무 옛날 내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획 자체가 2002년에 이뤄진 것임을 생각하면 아마 촘스키의 생각은 변함없을 겁니다. 다만 과거에 비해서 여건이 많이 바뀌었는데, 지금의 촘스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요?

끼워주는 책도 2002년 기획이지만 해당 시기에 프랑스인들에게 촘스키의 생각을 알리고 싶어서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의 촘스키에 가깝지 않을까 싶군요. 보면서 느끼는 점은 촘스키는 지독한 낙관론자라는 겁니다. 그렇게 안 느껴질지도 모르겠군요. 촘스키는 이런 식으로 말하죠.

"그건 당신이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중앙아메리카에서 발생한 20만 구의 시체를 본다면 그리 인상적인 승리 같지 않겠지요. 하지만 거기에서 아직 살고 있는 1천만의 인구를 생각한다면 일종의 승리인 거지요. 물론 당신이 바라는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더 나쁜 사태는 막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시민들의 반정부 활동이 그다지 인상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의견에 대해서)"
44쪽

그가 하는 말을 읽으면서 프래그머티즘에 대해서 발표한 기억이 나더군요. 저는 듀이의 모델에 실수가 있지 않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듀이가 지나칠 정도로 낙관론자인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선 안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기억이 나는데, 알고 보니 촘스키는 듀이의 교육철학을 따르는 대안학교인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 출신이더군요. 프래그머티즘에 대해서 발표를 준비하면서 프래그머티즘이 보여주는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믿음과 낙관론이 인상적이었고, 반드시 우리가 도입해야 할 태도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듀이는 현대 사회에서 충분할 정도로 공격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반격 무기가 바로 촘스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1) 각주

1권의 부제는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관하여" 2권의 부제는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 3권의 부제는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로 되어 있습니다. 뒷권일수록 2000년에 가까워지고, 내용적으로도 우리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것이 바로 낙관론이 아니라면 무엇을 낙관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2005년에 인용한 《십자군 이야기》의 구절도 생각나네요.)

일단 1권의 경우는 여론조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촘스키는 과연 블로그에 대해서 무어라 논평을 할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들풀님 블로그를 보면, 블로그와 유튜브의 공동 전선에 조지 앨런이 무너졌는데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언론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이 공세를 과연 기존 언론들이 받아낼 수 있을까요? :)


한결같이 진실을 말한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 89년의 강연도 이토록 충격적인데 지금의 촘스키는 어떤 진실을 말하고 있을런지요. 지금까지 읽은 중 가장 충격적인 진실을 인용하며 이만 씁니다.

보십시오. 1980년대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이 용병국가mercenary state라는 매개를 통하여 해외 개입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미국 용병 국가들의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스라엘이 주역이었고 타이완, 남아프리카, 대한민국, 그 밖에 세계반공연합에 가입한 국가들, 서반구를 결속시키는 각종 군사 단체 등이 있었습니다. (하략)
28쪽

강조는 참조자 본인. 이 논평은 89년 4월 15~16일 공개 토론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듭니다.

Woman : 선생님의 그런 언론 분석을 "음모론"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나의 분석은 음모론과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분석은 개인의 역할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부품일 뿐입니다.
기업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뛰는 사람들은 이익과 시장 점유율을 올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에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압니다. 이것을 지적하는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하나의 당연한 제도를 지적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오, 그건 음모론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웃어버릴 겁니다. 우리가 지금껏 말해온 것은 제도적인 요소들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보도의 한계를 규정하고 또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기관들의 해석을 결정하는 거지요. 이건 음모론과는 정반대입니다. 정상적인 제도 분석이고 당신이 세상의 움직임 또는 작동방식을 이해하고자 할 때 자동적으로 들이대는 분석의 틀입니다. 그걸 "음모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걸 방해는 것입니다. "음모론"은 정신적인 욕설 비슷한 것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이대는 논리입니다.
73쪽


각주1) 존 듀이는 20세기 전세계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육사상가입니다. 듀이 교육철학의 기본이 바로 프래그머티즘 - 실용주의, 혹은 상대주의로 번역되는 사상입니다. 이 번역이 정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쨋거나 교육에 있어서는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며, 교사의 역할은 학생을 충분히 이해하고, 학생이 경험하는 모든 영향과 접촉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에 중심을 둡니다. 즉 교육의 중심은 체험자 본인에게 있는 것이고 교사는 가이드로서 존재하는 교육입니다. 클린턴의 교육은 이 프래그머티즘에 입각해 있으나 조지 W. 부시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했지요.

이런 걸 쓰다보면 꼭 어딘가 틀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부들부들. 듀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강한 태클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흙.;

앗, 제일 중요한 건 빠뜨렸군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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