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5월의 마지막에 조금은 힘을 냈다. 《n분의 1의 함정》과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 처음으로 카카페를 결제한다거나 미뤄뒀던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다. 《n분의 1의 함정》은 근사한 표지와 게임 이론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비하면 심심한 책이었다. 그냥 지금 내 상태가 이 책을 재미있게 여기기에 적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기에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다는 점은 칭찬할만 하다.

《오래된 미래》는 책장을 뒤집었다가 발견한 책으로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좀 시니컬한 태도였다. 아름다운 미개척지에서 현대 산업화를 반대하는 백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이 시점에선 아무래도 무감동해지기 쉽다.

저자는 언어학자로서 곧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라다크어를 기록하기 위해 라다크로 왔다가, 언어라는 것이 늘 그렇듯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연구 중에 라다크에도 산업화의 압력이 오고, 라다크 역시 "발전"이라는 멋진 말을 받아들인다. 전신주가 생기고, 관광업이 생기고, 새로운 종자가 들어오고 새로운 품종의 소를 키우게 된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은 가난을 배우고 경제 격차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특이하게도 라다크는 기상과 자연 환경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이 약 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짧은 기간에 노동을 하고 그 후에는 단기간 축적한 자원을 소모하면서 긴 휴식을 가진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 다산하지 않고, 가족 중 유산 분배를 받기 어려운 후순위 자녀들은 출가를 하기도 하고, 일처다부제 또는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는데, 보통은 형제 또는 자매가 한 사람의 처나 한 사람의 남편을 공유한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문화를 통해 조용하고, 안정된 인구 체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라다크에 어울리는 오래된 경험일 것이다.

이런 독특한 점 때문에 라다크 사례가 모든 저개발국가에 도입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요롭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사회는 원래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라다크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하고, 라다크가 지켜질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배울만한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전기 설비를 최소화 해서 대규모 댐을 짓고 전신주를 세우는 자원 낭비 대신 소규모 전력 생산을 하고,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는 곳에 사용한다. 태양열을 최대한 활용해 난방비를 절약하면서 기존의 건축양식을 해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라다크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파괴적일 필요도 없고 진보라는 것과 서구화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이런 배움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생각들을 익숙하게 여겼는지 잘 모른다. 환경주의의 고전이 된 이 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깊은 권위를 유지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느낀 독서였다. 이 책은 아마 꽤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시간을 재는 경우에도 느슨하고 여유롭게 잰다.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내일 낮에 찾아올게" 혹은 "저녁쯤 찾아올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다크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에 대해 넉넉한 여유를 남겨 놓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공그로트gongrot'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체nyitse'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는 '새의 노래"라는 뜻의 '치페 치릿chipe-chirit'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이 모두가 넉넉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93쪽


라다크의 열악한 통신환경 역시 내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간 내가 라다크의 전통사회에서 직접 경험했던 그들의 그 놀라운 생동감과 행복감은 삶의 기쁨이라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있고 또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안에 있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확신한느 것이 바로 그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주변부에 있다고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다른 세상의 소식을 접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생각만큼 그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 할지 모른다. 실제로는 그와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스타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소극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진 화려한 모습들 때문에 라다크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의 색깔은 퇴색되어버릴 수도 있다.
247쪽


라다크의 상황이나 인근 지역인 히말라야 부탄 왕국의 상황은 인간을 위한 복지 수준을 금전의 고나점에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치 못한 일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곳 모두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 비해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곳이다. 사람들은 기초적인 생활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고 아름다운 예술품과 음악을 즐기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나 여가 활동을 하는 시간이 서방 세계에 사는 사람보다도 많다. 그러나 IBRD는 부탄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부탄의 GNP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국제간의 경제 규모 순위에서 바닥에 랭크된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뉴욕 거리의 노숙자들과 부탄이나 라다크 농부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들 모두 수입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통계수치의 뒤에 있는 현실은 낮과 밤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262쪽


개발을 추진하는 당사자들은 천연자원의 한계를 무시하면서 모든 사람이 뉴요커처럼 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런 문제를 두고 경제학자들과 환경학자들 사이에는 오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낙관적 성향의 기술주의자들은 자원고갈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될 것이고 과학의 힘으로 지구의 부존자원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인간의 의지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자원의 유한성을 부인하는 한편 부의 재분배를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교묘하게 조작하는 것이다. 만일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언제나 원활하게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변화라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로서는 그저 교육만 잘 받으면 되는 일이고 선진국들의 큰 형님들이 지나갔던 길을 충실하게 답습하면 되는 일이다.

이러한 주장을 요약한다면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빈곤과 인구과잉이며 그 해결책이 되는 것은 바로 경제개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인습적인 경제개발에 있다. 경제개발이 추진하는 도시화와 산업화는 농경 및 지역 경제를 무시하는 한편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의 빈곤을 초래했다. 내가 라다크에서 경험한 바로는 경제적ㅇ니 측면이나 사회 심리적인 압력들로 인해 인구과잉이 초개된다고 이해되고 있지만 그 주된 요인은 사람들과 지역 자원과의 분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학자들의 인식에서도 실제 현대화된 세계와의 접촉 이후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하략)
272쪽~273쪽


수치를 측정하는 척도 역시 유럽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세계 전역에서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의 경우 몇 살이 되면 표준 체중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든가 실내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든가 건강을 위한 식사는 어떤 것이라든가 하는 등의 기준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서구 전문가들은 라다크의 사람들과 동물들에 대해 '왜소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국제표준보다 작다는 의미다. 방사능 노출 허용 기준도 젊은 유럽 남성에 맞추어 성별, 연령, 체격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자신의 분야에만 편협하게 몰입하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포괄적 의미와 자신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제시하는 대안들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보지 못한다. 최근 있었던 어느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에게 아프리카에 외국 야채 종자가 수출되기 전까지 그 사람들은 어떤 야채를 먹고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이 주어졌다. 그때 스웨덴의 한 농업 전문가는 '그들이 그 이전에는 야채를 먹지 않았고 그들이 먹었던 것은 잡초였다'고 대답했다. 그 스웨덴의 전문가에게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먹었던 식물들은 자신들이 먹고 있는 '야채'와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274쪽~275쪽


탈중심화의 개발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가치에 있어 그 균영을 복원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산업화 문화에서 권력이란 남성들에게 거의 독점적으로 부여되는 것이었다. 산업화 문화의 초석을 이루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경제체제는 그 시초부터 남성 주도로 이루어졌다.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임금노동을 위해 남성들이 도시로 떠나감에 따라 여성들은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뒤떨어진' 존재로 전락했다. 농경 경제체제에서도 기계화의 도입으로 인해 여성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지역의 결속을 강화하는 탈중심화의 개발은 여성의 목소리가 더욱 명확하게 들리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더 이상 의사결정과 경제 활동의 주변부에 머무리지 않고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296쪽


P.S.1 이 책은 본래 작은 출판사를 통해서 소개되었다가 2000년 중반경 중앙F&B로 출판사를 바꾸었다. 바뀐 거대 출판사의 초청이라든가, 재계약을 얻은 수익이 라다크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며, 《오래된 미래》의 전파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묘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P.S.2. 발췌문을 정리하면서 보니 우리 사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겠다.


n분의 1의 함정

게임 이론에 대한 입문서로서 복잡한 계산식 없이 몇 가지 게임 이론을 간략한 예시와 함께 제시한 책으로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게임 이론에 따른 승리 전략과 게임 이론에 의한 승리로 얻는 이득의 이상한 점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사실 수학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게임 이론에 대해서 제대로 공감해 본 적이 없으므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미 사람들은 보아 왔으니까요.

목표가 단순히 이기는 것이라면,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상황을 복잡하게 풀념서 곁길로 빠지지 말자. 윈스턴 처칠도 말했다. "전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가끔은 결과에 신경 써야 한다."

경제적/전략적 사고에 목매지 말자. 때로는 상대를 그냥 믿어주는 것도 합리적인 방책이다.
n분의 1의 함정 223쪽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애드센스 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