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이 책은 에세이 사은품을 받으려고 구매했던 책이다. 남자 작가의 책은 그만 읽어야지 하다가도 아주 피할 수만도 없으니 가끔은 읽게 된다.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간 편향된 독서로 보낸 세월이 아까워서 부리는 몽니다.

에세이이다 보니 남자의 속좋은 인생사 이야기가 나올때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업무의 전문성, 온건주의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거시적인 사회현안에 대한 생각들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가 인기있는 이유를 알만했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극단적이지만 진짜로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건 그렇게 극단적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저 극단적인 사람이 더 눈에 띄기 쉬울 뿐이다.

온건하고 그럭저럭 합리적으로 사회가 돌아갔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다.

2017년을 거쳐 2018년을 맞이하며 우리가 겪은 아픔과 비상식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다. 나는 이보다 빠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뿌리깊은 문제들은 많이 남아 있고 어떤 것은 어렵게, 어떤 것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는 상식있는 사람들이 발언하고 위로할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겠지만 그의 공개된 글들을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한 번에 묶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의문점은 그렇게 냉철하고 날카롭고 실증적이던 비판의식이 대안 제시 단계에서는 갑자기 종교 수준의 낙관주의로 돌변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역사 내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웠다면 어떻게 갑자기 노동계급에 대한 헌신과 희생정신에 불타는 전사로 돌변하며, 당(즉 지배 엘리트)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은 채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사람들은 사유재산과 이윤 동기 없이도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말인가. 그게 근본적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인 설명이 너무나 부족했다.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에서 깨어나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 거듭나면 된다는 식인데 이건 종교일 뿐이다. 개미 연구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이 정확하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種이 틀렸다." (하략)
「88학번」 99쪽~100쪽


자본주의 체제이면서도 그 정치적 기본 토대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된 순서를 밟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공존하던 1930년대 독일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내 대학 시절의 한국사회도 그랬다. 고도 성장기의 자본주의, 전체주의적인 군두독재,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문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이념인 20세기 초반의 러시아혁명 이론부터 20세기 후반 유럽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또다른 전체주의인 주체사상까지 혼재했던 거이다. (하략)
「88학번」 104쪽


이 글을 읽으며 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이십대 시절에 쓴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나오는 일본 이십대의 사고방식과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이 노리토시에게 "일본 젊은이들은 이처럼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왜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라고 묻자, 노리토시는 "왜냐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일본 젊은이의 행복은 이렇다.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기본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고 맥도날드 런치 세트로 식사하며 친구들과 수다 떨고, 집에선 유튜브를 보거나 스카이프 채팅을 하고 가구는 이케아에서 구매, 밤에는 친구 집에서 식사하며 한잔한다. 그리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름 즐겁다.' Wii나 PSP를 구입할 정도의 수입은 있고, 이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연인이나 친구가 있다면 대개의 경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지수는 근래 40년 중 최고치란다. 이에 대한 한 학자의 해석은 이렇다.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일본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격차사회, 계급사회가 되면 역설적으로 행복지수 자체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고도 성장기의 버블이 다 꺼진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일본이든 우리든 지난 시대의 기준을 들이댄 '세대론'으로 현재를 완벽하게 설명하려 드는 건 어리석다. 처한 입장과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다양한 개인들을 '세대'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이십대를 괴물이 되어버린 세대로 보는 것도, 모든 것에 달관한 세대로 보는 것도 모두 성급하게 느껴진다. 그저 지금 시대상의 한 단면씩만을 잘라서 보는 것은 아닐는지.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116쪽~117쪽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현상을 조너선 하이트의 이론을 빌려서 설명한다. 하이트에 의하면,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데, 만일 집단 내의 도덕적 입장이 빠르게 변했다면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다른 의견이 용인된다는 신호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견이 명백히 나뉘는 사안에서 반대되는 입장의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반대 의견을 듣고 나면 오히려 기존의 신념을 강화한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정설이지만, 비슷한 의견을 가진 집단 내부에 균열이 생기면 집단 전체가 마음을 바꾸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162쪽


사학비리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다. 사건을 제보한 사람은 재단 이사장의 심복인데 횡령 사건을 일으켜 해고당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은 보스에게 앙심을 품은 셈이다. 사건 초기에 교수들과 학생들은 이사장을 감쌌다. 학교가 비리의 복마전으로 소문나면 자신들에게도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사장 일가는 등록금은 물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할 정부지우너금까지 횡령하여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교내 시설공사비 중 상당 금액을 리베이트로 받아 부실공사를 자초했다. 제보자가 비열한 복수심으로 학교에 오명을 끼쳤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깨닫고 나서야 이사장의 엄벌을 타우너했다.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조폭의 의리와 시민의 윤리」 214쪽~215쪽


기본적으로 말 많음을 불신하고 과묵함을 선호하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핀란드 유머가 재미있다. 핀란드인 두 명이 코냑 열 잔 정도를 침묵 속에 비우며 백야에 지평선 따라 움직이는 태양을 구경한다. 마침내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늘 멋지군……."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 술 마시러 왔지 종일 수다 떨려고 왔나!"
「지상천국은 존재하는가」 261쪽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에세이를 사면 주는 컵을 받기 위해 행사 상품을 보던 중에 발견해서 구매하게 된 책입니다. 이 전에 트위터에서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이 이 책의 원서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어요.

여행사 과장의 그림일기로, 맛있는 것을 먹은 후 기억해 와서 그 날 일기를 쓰는 식으로 그렸다고 해요. 펜에 마카로 칠한 그림이 꽤 상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취미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솜씨인 것을 알아볼 정도의 잘 그림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시노다 과장은 이 일기를 23년간 썼다고 하는데, 대학 노트로 45권 분량이래요. 그 중 특별히 좋은 것을 골라 실은 책이므로 시기는 1990년부터 책이 출간된 최근까지 이어집니다. 뭐랄까, 버블기에 20대를 맞이한 사람의 여유가 느껴지는 책이라고 할까요?

교양으로는 지금 시기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많겠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20대 중반에 그 정도의 음식 경험을 쌓는 것은 역시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하는 것은 역시 정신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해요. 좋은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여유가 아닐까요?

저에게는 20대 초반의 동생이 있는데, 동생과 함께 음식을 먹으러 나가면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용돈을 짜게 받는 것도 아니지만, 식문화라는 것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가 되기 쉽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하면 역시 관심이 있어야 하고, 관심이 있더라도 에너지나 경제력, 주거지 환경이 갖춰주지 못한다면 이루기 어려운 일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식문화가 발달하고 외국의 각종 요리를 잘 받아들이는 나라인 것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좋은 시기에 태어난 마음 좋고, 교양 있는 사람의 삶을 훔쳐보는 것은 이 시기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부럽게 느껴집니다.

저자는 이 노트를 남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지만 골라서 편집한 책이므로 꾸밈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23년을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비슷한 어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본인의 내면이 확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맛없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23년간 노력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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